07_건강_食_교육

전직 요리사들이 전하는 청와대 식단

전동키호테 2008. 2. 16. 18:59

생선머리가 식탁에… YS "맛있데이" DJ "살코기는?"

2008년 2월 15일(금) 오후 6:40 [한국일보]

전직 요리사들이 전하는 비하인드 스토리
#1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초기 청와대 관저. 손명순 여사와 함께 하는 저녁 식탁에 대구탕이 올랐다. 수저로 국그릇을 휘젓던 YS가 갑자기 묻는 말, “대구 머리 어디 갔노?” 대통령께 ‘생선 대가리’ 를 드리지 않는 것은 청와대 조리팀의 오랜 관례였지만, YS는 생선 머리를 유독 좋아했다. “대구는 머리가 가장 맛있는 긴데…” 이후 ‘생선 박사’ YS의 밥상에는 늘 생선 머리가 올랐다.

#2 5년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한 청와대 관저. 주메뉴로 민어탕이 올라왔다. 민어 역시 머리가 맛있어 조리팀은 대통령의 국그릇에 특별히 머리 부위를 담았다. 그러나 DJ, 몇번 국물을 떠 먹다 청와대 운영관에게 역정을 내며 묻는다. “왜 머리밖에 없어? 살은 자네가 다 먹어부렀어?” 민어탕을 다시 내오기 위해 주방으로 가는 운영관의 발걸음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대통령마다 통치 스타일이 다르듯, 식성도 제각각이다. 대통령의 밥상은 최고 권력자의 성격과 기호를 보여주는 돋보기 렌즈이자, 현대정치사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창호 구멍. 칼국수에서 홍어, 도다리회, 과메기로 이어지는 대통령들의 대표 음식은 정권의 정치한 ‘상징조작’이기도 하다.

DJ 시절 청와대 운영관을 지낸 문문술(55ㆍ현 메이필드호텔 총주방장)씨와 1990년부터 8년간 대통령 관저의 양식 담당 조리사로 일한 이근배(52ㆍ현 종합식품업체 그린팰 이사)씨를 만나 ‘현대판 수라상’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이들은 “대통령의 밥상 하면 흔히 대장금이 차린 궁중 잔칫상을 떠올리지만 실상은 일반인의 밥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일품요리 두어가지에 반찬 대여섯 가지 정도의 ‘소박한 밥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 ‘까다로운 미식가’ DJ 정권 교체를 이룬 DJ정부의 출범으로 청와대 식단에도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경상도 출신 대통령 일색이던 청와대에 최초의 전라도 대통령이 입성하면서, 영남 음식 위주였던 식탁에 홍어, 갯장어, 톳나물, 돌산 갓김치 같은 호남 음식이 ‘메인 디시’를 차지하게 된 것.

DJ는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식성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특히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청와대 생활 초기 오랜 선거활동의 여파로 식사를 잘 못해 조리팀의 애를 태웠다. 운영관이 식단을 짜면 부인 이희호 여사와 주치의가 직접 보고 조율할 정도로 건강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날의 메뉴를 좋아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 항상 대안음식도 마련해 놓아야 했다. 한번은 DJ가 상에 오른 시금치된장국이 맛이 없다며 먹지 않아 예비로 끓여둔 생태탕을 권한 적도 있다고. 해외순방 때는 버석버석한 외국 쌀로 DJ가 좋아하는 고슬고슬한 밥을 짓기 위해 솥을 구하느라 법석을 떨기도 했다.

DJ는 주전부리를 즐기는 편이었다고 한다. 호두 같은 견과류와 라면을 특히 좋아했다. 밤 늦게까지 업무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야참으로 라면을 많이 먹었는데, 가끔 이희호 여사가 직접 끓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경호실에서 운영관에게 연락하면 근처 관사에 살던 운영관이 나와 끓이는 일이 많았다.

한번은 해외순방에 나선 DJ가 비행기 안에서 냉면을 찾았다. 냉면 육수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난감했다. 문문술 전 운영관은 “임시방편으로 스테이크를 삶고 동치미 국물을 섞어 만들었는데 제법 냉면과 비슷했다”며 “기대하지도 않은 냉면상을 받은 대통령께서 너무 흡족해 하셔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문문술씨 최고의 순간은 역시 남북 정상회담 때였다. 남측 주최 만찬에 양식 코스 요리를 내놨는데, 식사를 마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말했다. “남측 음식은 맛은 있는데 개성식”이라는 것이었다. ‘개성식’이란 양이 적다는 의미, 더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는 뜻이었다.

■ ‘칼국수 대통령’ YS김영삼 정부는 최초의 문민정부답게 서민적인 청와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상징물이 칼국수였다. 칼국수는 YS 본인이 굉장히 좋아하기도 했지만, 청와대가 은밀하고 권위적인 ‘아방궁’이 아니라 보통 살림집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칼국수가 청와대의 대표음식이 되면서 대통령의 영양에는 비상이 걸렸다. 손님들이야 한번씩 먹는 별미지만, 대통령은 3년 내내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어야 했던 것이다.

이근배씨는 “단백질 강화를 위해 설렁탕으로 메뉴를 바꿔봤지만, 손님들이 ‘왜 나는 청와대 칼국수 안 주느냐’며 항의해 다시 칼국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며 “대신 육수를 진하게 하고, 인절미나 과일, 호박전 같은 사이드메뉴를 첨가했다”고 말했다.

칼국수는 맛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면발이 불지 않게 하는 것이 관건. YS는 식사시간이 단 5분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스타일이라 조리팀이 맛있는 상태의 음식을 제공하기가 편했?그런데 1994년 7월초 어느날 칼국수가 서빙되는데, 의전비서관이 대통령에게 메모지 한 장을 전달했다.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YS는 밖으로 나가 20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칼국수는 퉁퉁 불어터지고, 상은 치워졌다. 다시 점심을 차리라는 연락이 온 것은 조리팀이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 뉴스를 들은 직후였다.

칼국수 외에도 YS는 생선을 특히 좋아해 조리팀은 우럭미역국, 광어미역국, 대구미역국 온갖 종류의 생선 미역국을 끓여야 했다. 간식은 거의 안 하고, 아침에도 조깅 후 국 한 그릇과 과일 한 접시면 끝이었다. 저녁 만찬이 영양 보충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끼니였다.

■ ‘된장 마니아’ 노태우노태우 전 대통령은 산골 출신이라 그런지 된장류를 유독 즐겼다. 특히 멸치국물에 푹 익은 김치를 송송 썰어넣고 콩나물과 쌀밥을 곁들여 끓여낸 ‘갱시기’를 아주 좋아했다. 경상도 음식 갱시기는 나물을 넣고 끓인 국에 찬밥을 넣은 뒤 한 번 더 끓여내 먹는 것이다.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 서민들이 먹던 음식이다. 이근배씨는 “대통령들은 바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후 청와대에 들어오기 때문에 식성도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대부분 성장기에 즐겨 먹던 소박한 음식을 찾는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