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7.13 23:39 / 수정 : 2007.07.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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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판 화타, 민중의술 키워야” 주장… 의학계 “과학적 검증 없이는 위험”
“이 아이가 ‘의사가 포기했다’는 이유로 생명의 끈을 놓아야 합니까.”
지난 9일 전라북도 전주지방법원 앞. 어깨 높이의 커다란 사진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선 한 여성이 행인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녀가 치켜든 사진 속에서는 ‘수족각화증’으로 손과 발이 심하게 갈라지고 부어 오른 여자 아이가 힘없이 눈을 뜨고 있었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여성이 머리카락 없는 모습으로 울먹이는 사진도 근처에 세워져 있었다.
시위에 나선 이는 대학강사 김미애(45)씨. 그녀는 무면허 의료행위로 기소된 장병두(92) 씨의 무죄를 주장하며 법원 앞에 섰다. “고등학교 때부터 항상 온몸이 저리고 아팠어요. 병원을 여러 번 찾아가도 이상이 없다고만 하더라고요. 신경정신과에 입원하기까지 했어요. 해결책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던 중 할아버지를 찾아가 진료를 받았죠. 지어주신 약을 복용한 첫날부터 속이 편해졌어요.”
김씨는 ‘장병두 할아버지 생명의술 살리기 모임’이 조직한 1인 시위의 첫 주자다. 모임은 장씨의 시술을 받은 환자들과 가족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지난 3월 개설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한 이들은 1만2500명을 헤아린다. 회원들은 4차 공판을 앞두고 이날부터 본격적인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장씨가 무죄를 받을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계획이다.# “생명 살렸으니 불법 아닌 정당행위”
“의사 면허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죠. 하지만 면허 있는 의사들은 모든 병을 다 고칩니까. 고치지도 못하면서 고치는 사람을 방해하면 됩니까. 할아버지처럼 잘 고치는 사람을 국가에서 보조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법정에 세워서야 말이 됩니까.”
- ▲ 지난달 14일 전라북도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무면허 시술로 고발된 장병두 씨의 3차 공판을 하루 앞두고 장병두 할아버지 생명의술 살리기 모임' 회원들이 선처를 호소하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장병두 할아버지 생명의술 살리기 모임 제공
시위에 나서게 된 동기에 대해 설명하던 김씨는 목소리가 점점 올라갔다. “할아버지와 같은 분의 의술이 제대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환자들이 앞장서서 무죄를 호소하는 무면허 의사 장병두씨는 지난해 11월 환자 A씨의 고발로 기소됐다. 장씨는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으며,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장씨를 고발한 30대 회사원 A씨는 “비만을 고치기 위해 장씨를 찾아갔으나 효과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장씨의 치료를 받았던 B씨도 “백반증으로 고생하다 결혼 전에 고치려고 찾아갔는데 효험이 없었다”며 장씨의 시술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반면 장씨를 옹호하는 이들은 암·당뇨·간질·백혈병·중풍 등 난치병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질병을 장씨가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장씨를 ‘현대판 화타’라고까지 부르기도 한다. 장씨가 환자들에게 받은 약값은 한 달에 50만원 정도. 환자들은 “그동안 병원에 쏟아 부었던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차라리 장씨의 의료 행위가 효험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공개 검증을 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행법상 공개 검증을 위한 진료 행위도 불법이다.
장씨의 구명을 위한 모임에는 판사·교수·초등학교 교사 등 사회 지도층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박태식 전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위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가 장씨의 진료로 살아났다고 한다. 장씨 구명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박 교수는 “실정법과 자연법이 충돌할 때에는 생명을 살리는 자연법에 먼저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박태원 변호사는 형법상의 ‘정당행위’ 규정을 들어 장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의료법상으로는 불법이더라도, 생명을 살리는 행위는 국민의 기본권과 생명을 지켜낸 정당행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씨를 포함한 비제도권 의술은 ‘대체의학’ ‘민중의술’ ‘유사 의료 행위’ 등 여러 가지 용어로 불린다. 대체의학은 주로 미국 등에서 서양 의학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쓰이며, 민중의술은 비제도권에서 자신들의 의술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 유사 의료 행위는 제도권 바깥의 의료 행위를 통칭하는 용어이나 개념이나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 확립된 바가 없다.
서양의학과 한의학 양 갈래로 제도화된 국내 의학계에서 비제도권 시술자들의 입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우일 민중의술살리기 서울경기연합 사무총장은 “전통 의술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 국민과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민중의술 측에서는 비제도권 시술자가 최소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스스로를 ‘민의(民醫)’라 부르는 이들의 진료 과목은 침술·뜸술·부항·사혈·벌침·기공 등 17개 분야에 걸쳐 있다.# 헌법재판소 “무면허 의료 전면금지는 합헌”
민중의술 살리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황종국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전면 금지하는 의료법은 국민의 치료수단 선택의 자유와 건강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취지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현행 해당 의료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황 판사는 “민중의술의 위험성을 과장해서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과잉 규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상당수의 국민들이 이러한 비제도권 시술을 이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표적 한방 봉사단체인 ‘뜸사랑’을 둘러싼 논란도 그 중 하나다. 침구사 자격증이 없는 ‘뜸사랑’의 봉사자들 역시 무면허 시술자들이다. 최근 보건복지부 민원게시판에 ‘뜸사랑이 무면허 시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오는 등 뜸사랑은 수차례 고발을 당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뜸사랑이 운영하는 ‘침뜸 봉사실’은 국회의원 회관 내에서도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다. 뜸사랑 조건원 사무처장은 “침뜸 봉사실은 2주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라며 “국회의원 회관 내 봉사실에도 하루 30~40명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뜸사랑의 뜸치료를 받은 사람은 지난해 13만명에 이르며, 자체 교육을 이수한 사람만도 3000명이 넘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료 행위에 대한 제도권 의학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시술이 효험이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부터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엄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개별적인 진료 행위에 우연이나 사술(詐術)이 개입하기 쉽기 때문이다.# “개인적 의술 있다면 제도권에서 검증 받아야”
의료계에서는 철저히 검증 받지 않은 사이비 진료 행위가 국민 건강의 직접적인 위해가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치과·성형외과·피부과 등 비보험 진료가 많은 분야에서는 ‘싼값’을 내세우는 불법 시술로 인한 피해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 김수범 부회장은 “일부 사람들이 효과를 봤다고 주장한다 해도 실제 의학적인 효과가 있는지는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개인적으로 터득한 의술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검증을 받은 후, 제도권으로 전수해 합법적으로 의술을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측도 단호하다. 과학적 검증이 결여된 무면허 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일체의 허용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어떤 질환이 어떤 방법으로 어느 정도 치유되는지, 어떤 조건에서 어떤 치유 효과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 치유 대상의 범위와 한계는 어떠한 지에 대해 과학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 의술을 인정해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박경철 의협 대변인은 “유사 의료행위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필요한 사항은 열린 마음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면서 “개인에게 진료 선택권이 있다고 해도 선택에 필요한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에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협 오윤수 홍보실장도 “의학은 근거 중심의 학문”이라며 “장병두씨의 경우처럼 어쩌다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의료 행위로 보기는 어려우며, 안정성과 유효성에 대해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갈등과 문제점을 해소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다. 현실적으로 국민들의 수요가 높은 데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문제를 음성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민중의술 측에서도 “정부에서 민중의술의 실태에 대해 제대로 된 통계라도 내놓고 규제해야 할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보건복지부 의료정책팀 곽명석 사무관은 “연내에 실태 파악에 나설 것”이라며 “유사 의료 행위에 대한 별도 입법을 통해 국가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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