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_찬양_音_가요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팔순 잔치

전동키호테 2007. 3. 29. 12:10
"오늘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문화계의 커다란 축일입니다."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는 이례적으로 성대한 생일 축하연이 열렸다. 이날 80회 생일을 맞은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를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마련한 잔치였다. 푸틴 대통령은 "그는 예술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물"이라며 "뛰어난 연주자이자 저명한 지휘자일뿐만 아니라 인권 옹호자, 민주적 이상을 위해 타협하지 않고 투쟁하는 세계적 인물"이라고 치하했다.

아내의 팔에 의지한 채 천천히 걸어들어온 로스트로포비치는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행운을 누리는 사람인 것 같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이날 팔순연에는 일본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 제자인 첼리스트 다비드 게링가스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비롯한 500여 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최고 기량의 연주자로 꼽히는 벤게로프는 로스트로포비치를 "내 음악의 정신적 지주이자 수호천사"라고 부른다. 이날 연회는 러시아 국영 TV를 통해 방송됐다. 대표적 일간지 '이즈베스치야'는 그의 생일을 기념하는 기사로 1면을 장식했다.

그는 구소련 연방이었던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태어났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등 거장을 사사했으며 지휘자로서도 세계적 명성을 떨쳤다.

러시아에서 로스트로포비치의 애칭은 '슬라바(Slava.영광)'다. '므스티슬라프'를 짧게 부르는 말이기도 한 이 별명은 그에 대한 국민적인 존경심과 맞아떨어진다. 확고한 정상의 위치를 차지한 연주자에 대한 최고의 칭송이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음악이 감동적인 이유는 고국의 정치적 부침과 함께한 그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구소련 시대 대표적 반체제 인사인 솔제니친과 사하로프를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나서면서 로스트로포비치 부부는 1974년 파리로 망명했고 4년 후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구소련 체제가 붕괴한 뒤 고르바초프에 의해 복권돼 16년 만에 러시아로 돌아온 그가 귀국 후 첫 무대에서 지휘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비창'은 세기의 명연으로 남아 있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로스트로포비치가 서베를린쪽 벽 아래에 혼자 앉아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역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이날 그는 수척하고 피곤한 모습이었다. "근육이 병들어도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연주와 지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던 열정적인 전성기 시절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올 2월 간종양으로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병세가 깊어진 이후로는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11살 때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발탁된 첼리스트 장한나(25)씨는 "항상 당당한 모습만 보이셨던 분이기 때문에 아프다는 말씀도 공식적으로는 하지 않았다"며 "수술.입원 이후 연락드리기도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조국 공헌 1급 훈장'을 수여했다. 또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유네스코가 수여하는 '모차르트 금메달'을 대신 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