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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구두닦이 아가씨의 '신바람 인생'

전동키호테 2007. 1. 8. 15:06
  • 25세 구두닦이 아가씨의 '신바람 인생'
  •     "어떻게 하는지 보여드릴까요?"

    • 윤지희(여·25)씨가 목장갑을 낀다. 구두약 뚜껑을 튕겨 솔에 묻힌다. 뽀얗게 먼지 앉은 구두에 쓱쓱 약을 칠하고 문지른다. 낡아떨어진 구두가 5분 안에 어느새 '반짝반짝' 새 구두. 이 아가씨, 예사롭지 않다. “4단계가 있어요. 먼저 솔로 구두에 약을 깨끗이 칠하구요. 그런 다음 천으로 구두에 있는 때를 빼요. 다시 손으로 약을 구두에 발라요. 손으로 해야 약이 잘 먹고 광이 나거든요. 그리고 열심히 문지르는 거죠.” 잘해놓고도 수줍게 웃는다. 영락없이 소녀다.

      하지만 윤씨는 구둣방 '차기 사장'이다. 아직 20대 팔팔한 나이. 더구나 여성 구두닦이다. 1평 남짓한 구둣방은 서울 중앙 우체국 바로 옆에 있다. 아버지가 30여 년간 고집스레 지켜온 구둣방. 아버지는 이 근처에서 알아주는 구두닦이다. 윤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하던 일을 어깨 너머로 보며 자랐다. 구두만 봐도 그 사람 발 모양이 훤할 정도다. 

    • ▲ 윤지희(오른쪽)가 구두를 문지르고 있다. 딸을 지켜보는 아버지 윤씨(왼쪽)


    • 매일 아침 6시, 25살 차기 CEO는 일과를 시작한다. 오전 중으로는 명동 일대 수십 군데 회사를 돌며 닦을 구두를 모은다. 오후는 본격적으로 구두를 닦는 시간이다. 다 닦고 일어서면 손이 얼얼하다. 그래도 좋다. 맘도 구두처럼 깨끗해진다.

      윤씨는 지난해 12월 구두닦이가 됐다. 아버지를 돕던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셨기 때문. 어머니는 자궁 안에 물혹이 커져 대수술을 받았다. “감기 한번 안 걸리던 엄마였거든요. 충격이었죠. 제 옆에 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술이라니… 그 때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가족이 우선이란 걸” 당장 엄마를 대신해 아빠를 도울 사람이 필요했다. 일말의 고민 없이 2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날로 그는 아버지의 든든한 사업파트너가 됐다.

      물론 주위 친구들은 말렸다. “아직도 친구들은 저보고 미쳤다고들 해요” 지금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해요. 사람 만나는 이 일이 제 적성에도 잘 맞거든요”

      사실 윤씨는 만능 재주꾼이다. 대학에서는 컴퓨터를 전공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중소기업에서 근무도 했다. 지금도 그만둔 직장에서 러브 콜이 올 정도로 일을 잘 했다. 회사일 말고도 안 해본 게 없다. 2년 전엔 남대문 시장 가게에서 옷도 팔고 악세사리 장사도 했다. 6개월 동안 남대문 한복판에서 ‘골라골라~’를 외쳤다. 그가 뜨면 사람이 모였다. 자연히 가게 수익도 올랐다. 남대문 경험이 도움이 됐을까? 옷 가게에서도 인정을 받아 지점장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현재 윤씨 가족은 인천 부평구의 작은 집에 살고 있다. 그러나 현재가 있기 까지 고통스러운 시절을 겪었다. 6살 때 달동네에서 힘겹게 살던 기억이 머리에 박혀 있다. 그간 이사도 수없이 했다. 그는 잘 안다. 달동네를 벗어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렇기에 고생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르다.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없어요. 지난 30년을 아빠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5시면 구둣방으로 출근하셨죠. 술도 안 하세요.”

      아버지는 늘 딸이 안쓰럽고 또 대견스럽다. “기특하죠. 요즘 젊은 사람들 이런 일 하려고 하나요? 빨리 지 엄마가 나아야할 텐데…”

      25살 손톱에 매니큐어 대신 검은 구두약을 칠하는 윤씨. 힘든 일도 많았지만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수입요? 한 달에 100만원 정도. 아직 갈 길이 더 멀죠.” 그는 깨끗이 닦인 구두처럼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