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_감동_生_인물

박은주(56) 김영사 대표

전동키호테 2013. 3. 11. 08:48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박은주 김영사 대표]
"안철수씨는 아주 꼼꼼하고 세심… 정치판에서 마음결 순한 사람이 과연 헤쳐 나갈 수 있을까"
"DJ는 몇 시간씩 녹음을 해서 정리한 원고라 할지라도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박은주(56) 김영사 대표와 마주 앉았을 때, 나는 무엇으로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매스컴의 조명을 쭉 받아온 이 '출판계 여왕(女王)'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게 남아있을까 싶었다.

신입 직원으로 일할 나이인 32세에 김영사의 대표가 됐고, 아마 국내 출판사 중 단행본 베스트셀러를 가장 많이 냈으며, 직원 1인당 매출액이 한때 국내 기업 중 1위였고, 얼마 전 단행본 출판사 대표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으로 선출됐고, 여대생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명사였고, 그녀 자신은 결혼을 안 했고….

―일 때문에 결혼을 못 했다고 말하겠나?

"그런 게 아니라, 지금까지 결혼할 사람을 못 만나봤다."

―사귀는 남자는 있었지만?

"사귀는 남자도, 내게 결혼하자는 남자도 없었다. 금생(今生)에는 아니라고 봤다."

―소문으로는 동거하는 애인은 있다는데.
"(웃음) 내가 누구와 살고 있고, 아이가 외국에 유학 가있다는 소문도 나온다. 그런 뿌리 없는 것들은 어차피 사라질 테고. 중학교 2학년 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본 뒤로 '자아 완성'이 내 인생 목표였다. 1984년부터는 아침저녁으로 108배(拜)를 하고 '금강경(金剛經)'을 읽었다. 마음공부에 집중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어쩌면 출가(出家)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결혼과 가정이 귀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마음을 닦는 것이 더 귀했다. "

―그렇게 오래 수행했다면 벌써 인생의 답이 나왔어야 하지 않나?
"마음공부에 끝이 없을까 봐 불안했다. 영영 못 깨치고 이 세상을 떠날 줄 알았는데, 끝이 있구나,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결국 깨달았다는 건가?
"깨칠 게 없다는 걸, 길이 있는 줄 알았는데 따로 길이 없다는 걸 깨쳤다."

―그 오랜 세월에 걸쳐 수행하고서 겨우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인가?
"금강경을 2만 번 넘게 읽고서 그걸 알았다. 우리는 완전한 세상에 대해 꿈을 꾼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이 자체가 부족함이 없는 세상이다. 지금 일어나는 순간 순간에 있어야 될 것이 있고 이뤄져야 할 것이 이뤄져 있다. 더 완전한 세상이나 더 큰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당신이 깨달았다고 전제하고, 그전의 삶과 그 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세상에 궁금한 게 없어지고, 불만이 없어지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못 깨쳤다는 생각이 없어진 것이 달라졌다고 할까."

―당신의 삶에 김영사의 전(前) 사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내 삶의 유일한 멘토다. 그분이 젊은 날 존재와 죽음의 문제에 빠져있던 내게 공부하는 길을 열어줬다."

―그리고 서른두 살 된 여직원을 사장(社長) 시켰고.
"그분은 '나는 비즈니스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그게 현실로 올 줄은 몰랐다. 어느 날 신년 회의에서 나를 지목하며 '이 사람이 지금부터 사장이다. 내게 했듯이 잘 모셔라'고 했다. 그전에 아무런 암시도 없었다. 종일 말 한마디 없고, 무심한 분이다. 다음 날 그분은 회사를 떠났다. 지금은 지방에서 마음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 은둔적 삶을 좇아가지 않는가?
"가야 될 길이 다르다. 내게는 출판 일을 통해 세상을 더 좋고 이익 되게 만드는 길이 있다."

―당신이 김영사 사장이 된 뒤 첫 작품이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989년)였다. 18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출판계에 박은주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다른 대기업 오너의 책들도 있었지만 왜 우리 책만 베스트셀러가 됐느냐. 나는 김우중 회장 측에 '본인의 과오와 실패까지 솔직하게 젊은이들에게 들려주자'는 기획안을 보냈다. 그 인물을 홍보하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다. 인물을 너무 포장하면 오히려 감동이 줄어든다. 대단한 사람도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고 실패하는구나, 나와 다르지 않구나 하고 알 때 독자들은 마음을 연다."

―책의 인연으로 김우중 회장을 만나 보니 어땠나?
"소탈하고 격식이 없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몇 년 뒤 '세계경영'을 내자고 제안이 왔다. 그때는 '그런 책은 경영 전문 출판사에서 내는 게 좋겠다'며 내가 거절했다."

―비즈니스에서는 냉정하구나.
"당시 김영사는 작은 출판사였다. 모든 걸 다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분이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에 관심이 있었지, '세계경영' 슬로건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우는 IMF를 맞아 도산했다.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던 그 신화적인 존재가 국가 경제에 부담을 준 부실 경영인의 상징처럼 됐다.
"김 회장에 대해 그렇게 평가를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오히려 불운했던 분으로…."

박은주 대표는“우리가 꿈꾸는 완전한 세상은 사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당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1994년)도 냈다.
"1992년 대선에 패배한 뒤 정계 은퇴한 그분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머물고 있었다. 투사(鬪士)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유머가 많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영국에 두 번 갔는데 행복한 시간이었다."

―당신은 '정치 얘기는 빼고 젊은이들에게 들려줄 메시지를 위주로 하고 싶다'고 했으나, DJ 입장은 달랐다고 들었다.
"그분은 '내 삶이 정치를 통해 이뤄진 것이어서 정치 얘기를 완전히 뺄 수는 없다. 또 젊은이들만 대상으로 할 게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분은 자신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고 평가될 것인가에 대해 민감했다. 몇 시간씩 녹음을 해서 정리한 원고라 해도 시작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붉은 펜으로 원고를 그어버리고 다시 시작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적당히 수정해서 갔을 텐데 말이다."

―출판사로서는 정치인 DJ의 자서전을 내면 '딱지'가 붙는 부담이 없었나?
"그때는 정계를 은퇴했고, 그분을 싫어했던 사람들조차 연민의 감정이 없지 않았다. '우리가 그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도 있었고."

―책이 출간되고 1년 뒤 DJ는 정계 복귀 선언(1995년)을 했다.
"갑자기 책 판매가 끊겼다. 정치인이 되면서 인간 김대중의 인기는 떨어졌다."

―비슷한 시점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1995년)도 냈다.
"샐러리맨의 신화였던 그분이 현대건설을 나와 국회의원이 됐을 때다. 이 책은 90만부 넘게 팔렸다."

―MB를 만나 보니 어떻던가?
"밝은 성격에 소탈하고, 친화력이 뛰어났다."

―당시 그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대통령이 되면 잘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MB 임기 내 성적표가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은데.
"특별하게 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재임하는 동안 '불통(不通)'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기업과는 달리, 나라 경영에는 서로 생각과 입장, 노선이 다른 사람들까지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분은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확신해 임기 내 뭔가를 보여주려는 급한 마음에 불통이 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김영사에서 책을 낸 DJ와 MB는 대통령이 됐다는 점이 같다. 안철수씨도 '안철수의 생각'을 김영사에서 냈다.
"그분은 우리 출판사에서 이미 책 두 권을 낸 필자였다. 2004년쯤 그분이 '3년마다 책 한 권씩 쓸 수 있겠다'고 해서, 내가 '3년마다 책을 내자'며 일종의 구두 약속을 했다. 다음 책은 2007년에 나와야 했다. 하지만 자기 회사 CEO에서 물러난 뒤로, 포스코 이사회 의장, 미국 유학, 카이스트 교수, 청춘 콘서트 등 그분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치적인 영향력도 생겼고. 이 때문에 '도전' '융합' 같은 주제로 했던 출판 기획이 자꾸 바뀌게 됐다. 한번은 원고가 넘어왔지만 보류 요청이 있었다. 그렇게 작년 여름까지 미뤄지다가 정치 대담집이 나온 것이다."

―안갯속의 그가 '안철수의 생각'을 내놓았을 때, 나는 '대선에 나오는구나'를 확신했다.
"나는 그분이 우리 사회의 '멘토'로서 남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걱정스러웠다. 험한 정치판에서 마음결이 순한 사람이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사석에서 본인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나?
"언론 매체에 대고 말한 적이 있다. 가족과 주위에서 많이 말렸다. 하지만 본인이 시대적 사명이라고 판단했으니."

― 안철수씨는 어떤 사람 같았나?
"성격이 아주 꼼꼼하고 세심하다. 많은 생각 끝에 행동을 한다. 소위 성찰형이다. 이분이 낸 책들의 기조는 변한 게 없다. 거의 똑같다. 옛날에 했던 말을 반복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기본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늘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정신적 성숙이나 사색의 깊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것은 엄청난 철학이나 기술이 아니다. 가령 '정직하자' '약속을 지키자' '남에 대한 배려를 하자'는 것은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덕목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런 단순한 덕목을 실천만 해도 충분하다."

―김영사는 현재 직원 110명에 매출액은 420억원이다. 국내 단행본 출판사에서 규모로는 3위쯤 된다고 들었는데.
"1등이냐 2등이냐 하는 순위, 매출액 규모 같은 것은 망상(妄想)이라고 본다. 출판사 사장들은 매일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확인한다. 나는 그걸 하지 않는다. 나도 인간인지라 20등 하면 10등, 10등 하면 5등, 5등 하면 1등 하고 싶어진다. 순위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덜 팔리고 안 팔려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책을 낼 수가 있다."

―어떤 기준으로 책을 출간하는가?
"지식과 정보에서 선도하는가, 고정관념을 깨는가, 감동을 주는가, 우리가 몰랐던 것인가 등이다. 필요한 책을 기획하면 독자들이 택한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당초 1만~2만 독자만 읽어줘도 좋겠다며 찍었지만, 110만부쯤 팔렸다."

―당신은 다른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나?
"출판 일이 너무 힘들어 다음 생(生)에는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일을?
"종교인이 됐으면…"

―정말 다음 생이 있다고 믿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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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에 찬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