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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금호동 언덕길과 공원

전동키호테 2010. 4. 9. 08:16

 

밉고도 보고 싶은 첫사랑 고갯길
금호동 언덕길과 맨발 공원

 

따사로운 햇님이 작별을 고할 때면
당신의 발자국을 오늘도 주우며
외롭게 걸어 넘는 금호동 고갯길에
당신이 흘리고 간 많은 밀어들
오늘도 이 가슴을 울려줍니다.

-1970년대 남상규가 부른 노래 [금호동 고갯길] 중에서

 

성동구 금호동은 1960년대 달동네로 유명했던 곳이다. 나지막한 산자락을 오르내리는 이 동네 골목길에 들어서면 가난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과 좁은 골목길, 골목길에 쌓인 연탄재와 헐벗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은 당시 가난했던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그 무렵 이 동네를 찾게 된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착하고 성실했던 한 친구의 절박한 소식이 이 산동네를 찾게 한 것이다. 친구는 농촌 출신이었다. 그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난이 너무 싫어 무작정 상경했다. 그리고 어렵게 공부하여 여성복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가 일했던 곳은 당시 유행의 중심지였던 명동의 여성복 맞춤집이었다. 솜씨가 좋았던 그는 젊은 나이에 꽤 인기가 좋았다.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누리며 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친구에게 첫눈에 반한 여자 친구가 생겼다. 약수동에 사는 아가씨는 부잣집 딸이며 대학생이었다.

 

옷가게에서 손님과 디자이너로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된 그들은 가끔씩 금호동과 약수동 사이 언덕에서 만나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의 사이를 알아차린 아가씨의 부모가 극력 반대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반대에 저항하던 아가씨는 결국 부모님의 설득에 따라 헤어지자는 말을 남기고 그들의 사랑은 끝났다. 그들이 자주 만났던 금호동 언덕 위에서였다.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한 친구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며칠 후 상심에 빠져있던 그는 어느 날 금호동 자취방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된 상태로 집주인 부부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순진하기만 했던 친구가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 시도를 한 것이다. 다행이 일찍 발견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첫사랑에 실패한 친구는 얼마 후 금호동을 떠났다. 그리고 몇 달 후 군대에 입대했다.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은 군에서 제대한 이듬해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다시 금호동을 찾았다. 그들이 데이트를 즐겼던 언덕에 오른 것도 그때였다. 그는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의 정리를 했는지 담담하게 몇 년 전 그녀와 함께 걸었던 언덕길을 걸으며 첫사랑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리고 당시 가수 남상규가 불러 한창 유행하고 있던 금호동 고갯길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 친구와 함께 다시 금호동 언덕을 올랐다. 문득 남자는 죽을 때까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와 함께 언덕을 오르며 살펴본 마을 풍경에서는 옛날의 금호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던 판자집들은 한 채도 남아 있지 않고 대부분 재개발되어 아파트 단지가 되어 있었다. 그 시절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는 곳은 산으로 오르는 비좁은 골목뿐이었다. 그나마도 현재 재개발이 한창 추진되고 있었다.

 

 

옛날 판자집들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던 언덕 위에는 ‘금호산 맨발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언덕 너머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능선을 따라 이어진 공원은 인근 주민들의 좋은 산책코스가 되어 있었다. 마침 7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천천히 걸어온다. “저쪽에 보이는 다리가 성수대교로구먼. 반포 쪽은 아파트가 가려서 보이지 않네. 옛날엔 강 건너 강남 일대가 황량한 벌판이었는데…….” 친구가 옛날을 회상하는 듯 지긋한 눈빛으로 성수대교 쪽 한강을 바라본다. 우리들을 지나쳐 저만큼 앞서 걷던 노부부가 멈추어 섰다. 노인은 할머니가 쓰고 있는 비뚤어진 모자를 바로 잡아 주고 있었다. “금슬이 참 좋아 보이시네. 늙어갈수록 저렇게 서로 보살피고 도와주며 살아야 하는데.” 친구의 눈길이 아련해진다.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친구는 그 순간 이 언덕에서 만났던 첫사랑 여인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작년에 세상을 떠난 부인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언덕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동안 한 마디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해발 130미터 금호산 꼭대기 군부대가 자리 잡은 언덕을 빙 불러 만들어진 공원은 잘 정비된 산책길 곳곳에 아담한 정자가 세워져 있고 넓은 공터에는 각종 운동기구들이 갖춰져 있었다.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친구는 별 말이 없었다. 가끔씩 멈춰 서서 잠깐잠깐 생각에 잠기는 것밖에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찾은 금호동 언덕은 40여 년 전 추억을 더듬는 초로의 친구에게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금호동 맨발공원 찾아가는 길 :
지하철 5호선 신금호역 2번 출구로 나가 골목길을 따라 도보 10분  

 

서울시홈페에서 퍼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