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_건강_食_교육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 수석총괄조리장 에드워드 권

전동키호테 2008. 12. 28. 20:40
두바이 7성급 호텔 수석셰프 에드워드 권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 38세 수석총괄조리장 에드워드 권
"한국에 요리학교 만들고 싶어… 그러려면 돈 많이 벌어야죠!"

에드워드 권(38·본명 권영민)은 두바이의 상징 ‘버즈 알 아랍 호텔’ 수석총괄조리장을 맡고 있는 한국인이다. 지난 12월 9·10일 양일간 버즈 알 아랍 호텔과 주메리아 비치호텔에서 권씨를 만났다. 그는 국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북하우스)의 저자이기도 하다. “버즈 알 아랍 호텔의 총조리장은 루이지 제로사입니다. 그 밑에 제가 있고 제 밑에 3명의 부총조리장이 있죠. 주방 안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요리사 260여명을 포함해서 420명 정도 돼요. 30여개 인종이 모여있고 한국인은 20여명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왔고 하나둘씩 데려왔죠.”


7성급 호텔로 불리는 ‘버즈 알 아랍 호텔’에는 아시안 뷔페 ‘준수이’를 포함해 6개의 레스토랑이 있다. “버즈 알 아랍 호텔은 모든 것이 최고입니다. 예전에는 호텔을 구경하는 데만도 7만원의 입장료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레스토랑을 예약한 손님만 입장할 수 있게 바뀌었지만요. 그리고 원래 7성급 호텔이라는 등급은 없습니다. 버즈 알 아랍이 다른 5성급 호텔들에 비해 수준이 현저하게 높으니까 관용어처럼 7성급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7성급 호텔… 요리사만 260명


부시· 마돈나·우즈도 그의 팬


권씨는 영동전문대학 호텔조리학과(프랑스 요리 전공)를 졸업했고 리츠칼튼 서울, 미국 리츠칼튼 샌프란시스코, 중국 톈진 쉐라톤그랜드호텔, 두바이 페어몬트호텔 등을 거쳐 ‘버즈 알 아랍 호텔’로 왔다. “운동 선수를 관리하듯 셰프들을 관리하는 전문 에이전트가 있습니다. 그들은 셰프를 소개해 준 대가로 해당 셰프 연봉의 17~25%에 해당하는 금액을 호텔로부터 받죠.”


강원도 강릉 출신인 권씨는 고3 때 가출해 주방보조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 요리를 접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반대로 신학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방황하다가 재수를 한답시고 무작정 서울로 가출했습니다. 당장 먹고살 돈이 없으니 공부는 뒷전이었고 경양식집에 취직해서 주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그때 주방 선배들이 ‘제법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말하자면 빨리빨리 씩씩하게 잘한다는 소리였는데 저는 제가 요리에 소질이 있다는 걸로 알아들었어요. 말이 씨가 되었는지 전문대학 진학을 결심하면서 자연스럽게 조리학과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대학 졸업 후 1995년 리츠칼튼 서울에 취직한 권씨는 ‘글로벌 셰프’의 꿈을 안고 200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리츠칼튼 하프문베이로 갔다. 물론 그의 미국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식재료의 차이가 아이디어, 실력의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그래서 권씨는 호텔 리츠칼튼 서울에서 근무할 때 서점에서 외국 요리책을 보며 공부한 것처럼 슈퍼마켓을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슈퍼마켓을 다니면서 수백 가지 치즈를 조금씩 사서 바게트 빵과 함께 먹어보았습니다. 일종의 ‘생식훈련’을 시작한 거죠. 많은 사람들이 맛은 혀로 느끼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감각의 종착역은 뇌입니다. 2008년 ‘미국 최고의 요리사’에 선정된 셰프는 설암에 걸려 혀를 절단한 사람인 걸요.”


그는 미국에서 일할 때 매일 별을 보며 출근해서 별을 보며 퇴근했다고 한다. “새벽 5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2년간 하루도 안 쉬고 20시간씩 일을 했습니다. 미국 친구들이 근무 분위기 흐린다고 저를 굉장히 싫어했어요. 하지만 ‘난 너희의 10분의 1도 모른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했죠."

각고의 노력 끝에 권씨는 2003년 미국요리협회가 뽑은 ‘젊은 요리사 톱10’에 선정됐다. 그리고 2006년 4월에는 두바이 페어몬트호텔로 왔다. 그는 미국과 두바이에서 근무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을 많이 만났다고 한다. “특별한 손님이 오면 식사를 먼저 낸 다음에 테이블로 가서 인사를 나눕니다. 지금까지 조지 클루니, 샤론 스톤, 피어스 브로스넌, 장 클로드 반담, 아놀드 슈워제네거, 타이거 우즈, 샤라포바 등을 만났습니다. 국가 원수는 대외비고요. 바버라 스트라이샌드는 저에게 개인요리사 자리를 제안하기도 했죠. 마돈나는 ‘당신 음식이 섹스보다 좋은데요’라고 말해줬고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기억에 남아요. 주방에 직접 들어와서 ‘참 잘 먹었다’며 저한테 악수를 청했어요.”


'버즈 알 아랍 호텔’의 수석총괄조리장이 된 요즘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직접 요리를 한다. “제가 만든 요리는 한 끼에 300만~400만원 정도 합니다. 풀코스를 만들려면 스케줄을 2~3일 빼야 하거든요. 또 집으로 손님들이 오면 당연히 제 요리를 맛보길 기대하기 때문에 제가 음식을 만들죠. 신혼 초에는 아내가 요리사인 저를 부담스럽게 생각했어요. 제가 한두 번 컴플레인을 하니까 ‘당신이 해먹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주는 대로 받아먹고 있습니다.”


권씨가 당당하게 ‘글로벌 셰프’가 될 수 있었던 건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는 미국식 일상용어들을 한국 발음으로 적어서 통째로 외웠어요. 두려움과 쑥스러움을 버려야 영어가 잘 됩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풍부하게 어휘를 알지는 못해요. 다만 의사전달에 필요한 정확한 단어 몇 가지만 알고 그걸 겁 없이 쓸 줄 알면 의사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가 ‘글로벌 셰프’가 되기까지에는 장 폴 나퀸, 사비에르, 루이지 제로사 등 스승들의 가르침이 주요했다고 한다. “서양의 레스토랑에서는 총조리장이 쓰레기통을 비우고 빗자루질부터 시작해요. 오히려 부하직원들은 요리에 전념하라고 하지, 절대 허드렛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그렇게 몸으로 가르쳐주는 조리장은 일부러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도 존경받아요. 말 그대로 ‘서번트 리더십’이지요.”


권씨가 역할 모델로 삼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은 앙드레 김이다. 앙드레 김은 그에게 셰프복을 만들어줬고 패션쇼에도 세웠다. 권씨는 요리사는 디자이너처럼 일종의 예술가라고 했다. “요리는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바람직한 요리사는 요리뿐 아니라 패션, 디자인, 음악, 미술, 건축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종합예술인’입니다. 따라서 요리사에게는 인테리어 감각도 필요합니다. 음식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떤 환경, 어떤 분위기에서 먹느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죠.”

"집에서도 요리하냐고요? 아내가 주는 대로 먹어요"


또한 그는 누구나 요리사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든 남을 위해 만들든 누구나 요리사잖아요. 그리고 요리사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직업이자 최후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죠.”
이제 당당하게 ‘글로벌 셰프’가 된 권씨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했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세계인에게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세계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맛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맛으로 바꿔서라도 그들에게 다가가야 세계화가 되는 거죠. 그리고 한식이 세계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면 먼저 식재료가 유통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모든 스시레스토랑에서 일본 기코망이 아니라 한국 간장을 쓴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권씨는 한식의 세계화와 함께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싶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한국에 요리학교도 만들고 싶어한다. 권씨는 지난 8월 서울현대전문학교 외식산업학부 석좌교수로 위촉되기도 했다. “한국에 이스라엘 키부츠 형태의 요리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학교를 농장에 만들어서 언제나 식재료와 함께 생활하다가 요리의 근본부터 응용까지 배우는 거예요. 게다가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학교를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재단을 만들어야 하고 큰돈이 필요합니다. 부지도 넓어야 하고 시설도 제대로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레스토랑 사업, 푸드 컨설팅 사업 등도 할 것입니다. 또 새해에는 한국 방송에도 자주 나올 테니까 지켜봐 주세요.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weekly chosun] 두바이 = 서일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