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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농사꾼 변신… 은퇴뒤 ‘행복’ 재발견

전동키호테 2007. 3. 7. 08:56

 

평균 수명이 늘어난 데다 지방의 삶도 나아지면서, 시골에서 제2의 인생을 가꾸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4가지 유형의 ‘귀농자(歸農者)’들로부터 ‘시골에서의 삶’에 대한 조언과 충고를 들어본다.

 



“아이고, 농사 이거 아무나 못 지어요. 지어본 사람이나 짓지. 손목이고 어깨고 아프지 않은 데가 없어요.”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유교리 ‘행복 버섯농장’ 컨테이너 건물. 허연 수염이 까칠한 오상환(60)씨가 앞치마를 두르고 아내 주홍순(56)씨와 함께 버섯을 포장하다 말을 꺼냈다.

밖에서 보기엔 허름한 컨테이너 건물이었지만 오씨 부부가 사는 이 살림집엔 냉장고·전자레인지·에어컨·컴퓨터가 갖춰져 있었다. 책장에는 ‘버섯의 모든 것’ ‘전원생활 제대로 알기’ 등 농업 서적과, 스티븐 코비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같은 책들이 빼곡했다.

서울에서 경동보일러 전무까지 지낸 오씨가 버섯 ‘농사꾼’이 된 건 2003년. 그 전해 퇴직한 뒤 아내와 함께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귀농(歸農) 박람회에 갔다가 ‘버섯 재배농가 분양설명회’를 들은 게 계기였다. 포천의 땅 3000평을 10명에게 300평씩 10년간 임대 분양한다는 것이었다.

“동년배 중에는 쉬는 사람이 많아요. 근데 퇴직했다고 마냥 놀 수 없잖아요. 늙어도 계속 일하는 모습을 애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죠. 서울서 1~2시간이면 오갈 수 있으니 좋고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에서 두 아들과 함께 살던 오씨 부부는 개포동에 소유하고 있던 시가 2억여원의 아파트 한 채를 팔았다. 자동온도조절장치를 갖춘 30평짜리 버섯 재배동(棟) 3개와 살림집을 포함한 200여평의 관리동(棟) 마련에 아파트 판 돈이 고스란히 들어갔다.



“요즘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올랐다던데, 아마 아파트 안 팔았으면 돈은 훨씬 많이 벌었겠죠. 하지만 후회 안 해요. 공기 좋은 데서 욕심 안 부리고 힘 닿는 데까지 일하니 건강하고 좋죠.”

중학교 교사와 꽃꽂이 강사를 한 ‘사모님’ 주씨는 검정색 누비 바지에 방한화를 신었다.

‘새송이버섯’을 재배하는 오씨 부부는 이번 설 명절에 버섯 선물세트를 2000만원어치 팔았다. 웰빙 상품으로 각광받는 버섯 상품의 고급화를 추구한 덕이었다. 새송이버섯과 표고버섯, 한우 등심을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한지(韓紙)로 싸서 분홍색 보자기로 곱게 포장한 선물세트는 15만원이나 했다. 한지를 포장에 사용한 건 30여년간 꽃꽂이 강사를 한 부인 주씨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오씨 부부도 농사를 처음 시작할 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버섯은 자동화 설비를 갖춰도 사람 손길이 닿지 않으면 잘 자라지 않았다. 2년이 채 못 됐을 무렵, 같이 버섯농가를 분양 받았던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해 지금은 10집 중 3집만 남았다.

버섯 관련 책을 수없이 읽고, 전국의 버섯 재배 농가도 찾아다녔다. 지난해에는 부부가 함께 포천시 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는 그린농업대학(학장 박윤국 시장)을 다니며 정보를 얻었다.

오씨는 ‘버섯은 사람 발걸음 소리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온도와 습도 등을 날씨에 따라 일일이 맞춰줘야 해,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꼬박 서서 일하다 보면 온몸이 쑤신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버섯 재배동 3곳 중 1곳에서만 재배하고, 설과 추석 등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는 때만 3개동에서 재배할 생각이다. 대신 지난해 마련한 가평 연인산 부근 700여평의 땅에 복숭아를 심어 인근 유원지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팔 계획이다. 현재 버섯만 재배해 연 3000만원의 소득을 올리지만, 복숭아까지 재배하면 더 많은 소득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서만 살아왔던 부인 주씨는 “농사는 사람 혼자 짓는 게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고 말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선물세트 포장작업은 두 시간여 만에 끝났다. 오씨는 그제야 허리를 펴며 말했다.

“사람들이 흔히 ‘늙어서 농사나 짓지’라고 말하지만, 농사는 들이는 품에 비해 소득이 적어요. 젊어서부터 귀농하고자 하는 지역의 농업기술센터 등을 찾아, 지역에 맞는 특용작물 등에 관한 정보를 얻는 등 미리부터 꾸준히 준비해야 합니다.”
 

[포천=안준호기자 libai@chosun.com]